
꽤나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필사 백업용으로 기록한다. 이방인을 너무 좋아하고, 카뮈의 네임밸류 때문에 기대했고, 제목 때문에 기대했는데 하여간 실망스러웠음. (너무 기대했을뿐 괜찮은 책이긴 함) 카뮈는 진짜 정신병원을 갔어야 함. 진지한 후기 쓰자면 철학적인(기껏해봐야 실존주의이긴 하지만) 이야기가 필수불가결하므로 귀찮음. 대화체로 진행되는 거 독특하다기보단 난잡하다 느껴짐. 주인공 자의식과잉이 너무너무너무 심해서 그런가. 그냥 내 감상을 요약하자면 ‘또라이가 쓴 논어’. 그래도 이걸 읽는 나조차 현대사회의 전락한 인간이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공감가는 대목들이 있다. 공감을 떠난 명문도 많아서 얇은 책 주제에 거진 페이지당 한줄은 필사를 해야 한다. 하여간 이런 타인과 스스로의 전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은 어찌나 불쾌하기 짝이 없고 힘겨운 일인지~
친구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지극히 간단합니다. 언젠가 친구 녀석들을 곯려주려고, 말하자면 친구란 녀석들을 벌하기 위해서 자살할까 하고 생각했던 날,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누구를 벌한단 말입니까? 어떤 자들은 놀랄 테지만, 아무도 벌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친구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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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사회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청결하게 살기를 원하느냐, 모든 사람처럼?"하고 물으면, 물론 "네"하고 대답하지요.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좋아. 너를 깨끗하게 처치해주마. 자, 직업이다, 가족이다, 정기 휴가다." 그러고는 조그만 이빨들이 살을 물어뜯어 나중엔 뼈만 남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해선 공정하지 못하군요. 저들의 사회라고 말할 게 아니지요. 그건 결국 우리 사회의 조직이니까요. 누가 먼저 남을 청산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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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메뚜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좀 비슷했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메뚜기는 아무리 몰려와도 나에게 동전 한 푼 이득이 없지만, 내가 멸시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음으로써 나는 생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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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옹도뇌르훈장을 탈 만한 기회도 두서너 차례 있었지만, 태를 부리지 않고 의젓하게 거절했지요. 그러한 태도에서 진정한 포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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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야망을 대신하고 있는 탐욕이라는 것을 나는 언제나 웃음거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목표는 더 높은 데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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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ㅡ 아, 이건 더욱 말씀드리기 어려운 일인데 ㅡ 동냥 주기를 좋아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나의 한 친구는 거지가 자기 집으로 가까이 오는 걸 볼 때 언뜻 느껴지는 첫 감정은 불쾌감이라고 고백했지만, 나는 더 심한 편이었어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거든요. 이 이야기는 그만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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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려면 자기가 사는 집의 문지기를 죽이기만 하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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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나처럼 자연적인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인생과 일치했었고, 인생의 아이러니, 그 위대함과 비참함을 조금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육체며 물질, 한마디로 형이하의 것으로 말하자면, 연애나 고독에 있어서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하고 낙망케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도 구속감을 일으키지 않고 한결같은 기쁨을 가져다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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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토록 충만하고 순박하게 인간 노릇을 하노라니, 어쩐지 초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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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느 누구보다 내가 현명하다는 확신과는 다른 것이었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그러한 확신이란 수많은 바보들도 갖는 것이어서, 가져봤자 별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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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한 성공이 단지 내 재능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기를 거부했습니다. 한 사람 안에 그토록 다방면에 걸친 너무나 큰 재질이 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단순한 우연의 결과만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게 살면서, 어쩐지 그 행복이 어떤 지상명령으로서 내게 허용되었다는 느낌을 가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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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해서 놀라시는군요. 문득 동정, 원조, 우정 따위의 필요를 느껴본 적은 없으십니까? 물론 있었겠지요. 나는 동정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동정은 더 쉽게 얻을 수 있고, 게다가 아무런 구속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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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사랑하는 직분을 가진 사람들, 말하자면 일가 동족들(굉장한 표현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또 그네들대로 골치가 아프지요. 그들은 제각기 할 말이 있는데, 차라리 그 말들은 탄환이에요. 그들의 전화는 소총을 쏘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게다가 겨냥도 정확하거든요. 아아! 시시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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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우리가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더 정당하고 관대한지 아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의무가 없기 떄문입니다.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어여쁜 애인과 만나고 하는 사이에 틈을 타서 말하자면 여가가 있을 때 찬사를 드리면 그만입니다. 죽슨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무를 짊어지운다면, 그건 추억을 요구하는 일일 텐데, 우리 기억력은 짧거든요. 그러니 친구들 속에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갓 죽은 고인, 마음속에 고통을 주고 있는 고인뿐으로서, 결국 그건 우리의 감동을 사랑하는 것이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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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야만 한다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대부분의 결단을 설명해주는 겁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야만 합니다. 사랑 없는 예속이라도, 또는 죽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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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않고서도 내가 그렇게 잘 알던 것, 즉 산다는 것을 좀 잊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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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도라니, 될 말인가, 우리는 반대한다! 제 집이나 공장에 노예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자랑한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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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역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든 하나는 있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이유에는 또 다른 이유가 대립해 끝장이 나질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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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노예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차라리 노예를 자유인이라고 불러두는 편이 나을 것 아닙니까? 우선 원리적으로 그렇고, 또 노에에게 절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노예에게도 그만한 보상쯤은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면 노예들은 계속 웃음을 띨 테고, 우리도 양심의 만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고통으로 발광하든가,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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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지옥이란 그런 곳, 즉 간판투성이의 거리, 변명이라곤 할 수도 없는 곳, 그게 지옥일 겁니다. 누구나 대번에 분류되어버리고 나면 그만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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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나는 언제나 허영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나, 나, 나, 이 '나'라는 말은 내 알뜰한 인생의 후렴 같아서, 내가 하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 말이 들렸답니다. 나는 자랑을 하지 않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특히 나의 숨은 재주인 그 겸양스러운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할 때는 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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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우월성밖에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나의 평온한 심경은 그것으로 설명될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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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놀라울 만한 망각의 능력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는 모든 일을, 무엇보다도 먼저 내 결심을 잊어버렸어요. 결국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요. 전쟁이며 자살, 사랑과 빈곤 같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긴 했습니다만, 그건 예의상이요 표면상으로 그랬을 뿐입니다. 때로는 내 일상생활에 관계없는 일에 열렬한 관심을 갖는 체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실상은 내 자유가 구속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정말 그 일에 참여하진 않았습니다. 뭐랄까요? 그저 스치며 지나갈 뿐이었어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스치면서 흘러가기만 했던 겁니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해본다면, 나의 망각이 기특할 때도 있었답니다. 모든 모욕을 용서하는 것을 신앙처럼 여기고 또 실제로 용서하기도 하지만, 그 일들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을 보셨겠지요. 나의 인품은 모욕을 용서할 만큼 훌륭하지 못했지만, 나는 언제나 받은 모욕을 결국에는 잊어버리곤 했어요. 그래서 내게 미움을 받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내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을 보고는 어리둥절해했지요. 그럴 때면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내 너그러운 마음씨를 찬탄하기도 하고, 아니면 나의 비굴함을 멸시하기도 했는데, 내 이유는 그보다 더 간단하다는 걸 생각하진 못했어요. 나는 그 사람의 이름까지도 잊어버렸던 겁니다. 나를 무관심하게, 또는 의리를 모르는 자로 만들던 결함이, 그럴 때면 나를 도량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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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혜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갱스터가 되어 순전히 폭력으로 사회를 지배하기를 꿈꾸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갱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지라, 대개는 정치르 수단으로 택하여 가장 잔인한 정당으로 달려갑니다. 모든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면 자기의 정신을 욕되게 한들 어떻겠습니까? 안 그래요? 내 마음속에서 나는 흐뭇한 압제의 몽상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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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없어서는 안 됐어요. 즉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또는 가능한 한 최대 다수의 인간들이 영원히 공백 상태로, 자주적 생활을 갖지 말고, 어느 때이고 내 부름에 응답할 태세를 갖추고, 내 광명으로써 내가 그들을 돕는 날까지 불모의 삶에 몸을 맡긴 채 나를 향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하는 사람들이 살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내 의사에 따라 이따금씩 일시적으로 그들의 생명을 얻을 수 있어야만 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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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령 당신이 죽어야만 당신의 생각, 당신의 성실성, 당신의 심각한 괴로움을 알아줍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그 처지가 모호하고, 기껏해야 사람들의 회의의 대상이 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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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자면 적어도 한 번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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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벌써부터 녀석들의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자살을 한 건 견뎌내지 못했기 떄문이지..." 아아, 여보세요, 인간의 생각이란 참 빈약하기 짝이 없어요. 한 가지 이유로서 자살을 하게 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안 들어간단 말입니다. 그러니 자진해서 죽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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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말로 어떠한 인간이라도(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 말하자면 현자들이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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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모두 예외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호소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모두 기어코 자기의 결백을 요구하려 들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 인류와 하늘이라도 고발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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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나서 될 수 있는 대로 거짓말을 늘어놓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깊은 욕망에 응하고 그들에 대한 당신의 우정을 이중으로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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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사랑한다고 대답하면 나는 실제의 감정을 넘어서는 것이 되겠고, 대담하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사랑받을 수 없게 될 염려가 있고 해서 마음이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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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을 죽이는 데는 언제나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요. 반면에 한 인간이 사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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