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SMALL

 

꽤나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필사 백업용으로 기록한다. 이방인을 너무 좋아하고, 카뮈의 네임밸류 때문에 기대했고, 제목 때문에 기대했는데 하여간 실망스러웠음. (너무 기대했을뿐 괜찮은 책이긴 함) 카뮈는 진짜 정신병원을 갔어야 함. 진지한 후기 쓰자면 철학적인(기껏해봐야 실존주의이긴 하지만) 이야기가 필수불가결하므로 귀찮음. 대화체로 진행되는 거 독특하다기보단 난잡하다 느껴짐. 주인공 자의식과잉이 너무너무너무 심해서 그런가. 그냥 내 감상을 요약하자면 ‘또라이가 쓴 논어’. 그래도 이걸 읽는 나조차 현대사회의 전락한 인간이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공감가는 대목들이 있다. 공감을 떠난 명문도 많아서 얇은 책 주제에 거진 페이지당 한줄은 필사를 해야 한다. 하여간 이런 타인과 스스로의 전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은 어찌나 불쾌하기 짝이 없고 힘겨운 일인지~


친구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지극히 간단합니다. 언젠가 친구 녀석들을 곯려주려고, 말하자면 친구란 녀석들을 벌하기 위해서 자살할까 하고 생각했던 날,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누구를 벌한단 말입니까? 어떤 자들은 놀랄 테지만, 아무도 벌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친구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요.

-

저들의 사회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청결하게 살기를 원하느냐, 모든 사람처럼?"하고 물으면, 물론 "네"하고 대답하지요.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좋아. 너를 깨끗하게 처치해주마. 자, 직업이다, 가족이다, 정기 휴가다." 그러고는 조그만 이빨들이 살을 물어뜯어 나중엔 뼈만 남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해선 공정하지 못하군요. 저들의 사회라고 말할 게 아니지요. 그건 결국 우리 사회의 조직이니까요. 누가 먼저 남을 청산하느냐?

-

하지만 그건 메뚜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좀 비슷했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메뚜기는 아무리 몰려와도 나에게 동전 한 푼 이득이 없지만, 내가 멸시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음으로써 나는 생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

레지옹도뇌르훈장을 탈 만한 기회도 두서너 차례 있었지만, 태를 부리지 않고 의젓하게 거절했지요. 그러한 태도에서 진정한 포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우리 사회에서 야망을 대신하고 있는 탐욕이라는 것을 나는 언제나 웃음거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목표는 더 높은 데 있었어요.

-

나는 또 ㅡ 아, 이건 더욱 말씀드리기 어려운 일인데 ㅡ 동냥 주기를 좋아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나의 한 친구는 거지가 자기 집으로 가까이 오는 걸 볼 때 언뜻 느껴지는 첫 감정은 불쾌감이라고 고백했지만, 나는 더 심한 편이었어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거든요. 이 이야기는 그만해둡시다.

-

유명해지려면 자기가 사는 집의 문지기를 죽이기만 하면 되거든요.

-

그렇습니다. 나처럼 자연적인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인생과 일치했었고, 인생의 아이러니, 그 위대함과 비참함을 조금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육체며 물질, 한마디로 형이하의 것으로 말하자면, 연애나 고독에 있어서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하고 낙망케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도 구속감을 일으키지 않고 한결같은 기쁨을 가져다주었답니다.

-

사실, 그토록 충만하고 순박하게 인간 노릇을 하노라니, 어쩐지 초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그건 어느 누구보다 내가 현명하다는 확신과는 다른 것이었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그러한 확신이란 수많은 바보들도 갖는 것이어서, 가져봤자 별수 없으니까요.

-

나는 그러한 성공이 단지 내 재능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기를 거부했습니다. 한 사람 안에 그토록 다방면에 걸친 너무나 큰 재질이 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단순한 우연의 결과만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게 살면서, 어쩐지 그 행복이 어떤 지상명령으로서 내게 허용되었다는 느낌을 가졌어요.

-

이런 말을 해서 놀라시는군요. 문득 동정, 원조, 우정 따위의 필요를 느껴본 적은 없으십니까? 물론 있었겠지요. 나는 동정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동정은 더 쉽게 얻을 수 있고, 게다가 아무런 구속도 하지 않습니다.

-

우리를 사랑하는 직분을 가진 사람들, 말하자면 일가 동족들(굉장한 표현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또 그네들대로 골치가 아프지요. 그들은 제각기 할 말이 있는데, 차라리 그 말들은 탄환이에요. 그들의 전화는 소총을 쏘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게다가 겨냥도 정확하거든요. 아아! 시시한 놈들!

-

그런데 왜 우리가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더 정당하고 관대한지 아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의무가 없기 떄문입니다.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어여쁜 애인과 만나고 하는 사이에 틈을 타서 말하자면 여가가 있을 때 찬사를 드리면 그만입니다. 죽슨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무를 짊어지운다면, 그건 추억을 요구하는 일일 텐데, 우리 기억력은 짧거든요. 그러니 친구들 속에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갓 죽은 고인, 마음속에 고통을 주고 있는 고인뿐으로서, 결국 그건 우리의 감동을 사랑하는 것이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야만 한다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대부분의 결단을 설명해주는 겁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야만 합니다. 사랑 없는 예속이라도, 또는 죽음이라도.

-

배우지 않고서도 내가 그렇게 잘 알던 것, 즉 산다는 것을 좀 잊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

노예제도라니, 될 말인가, 우리는 반대한다! 제 집이나 공장에 노예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자랑한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

거역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든 하나는 있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이유에는 또 다른 이유가 대립해 끝장이 나질 않을 테니까요.

-

그러니 노예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차라리 노예를 자유인이라고 불러두는 편이 나을 것 아닙니까? 우선 원리적으로 그렇고, 또 노에에게 절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노예에게도 그만한 보상쯤은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면 노예들은 계속 웃음을 띨 테고, 우리도 양심의 만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고통으로 발광하든가,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

그렇습니다. 지옥이란 그런 곳, 즉 간판투성이의 거리, 변명이라곤 할 수도 없는 곳, 그게 지옥일 겁니다. 누구나 대번에 분류되어버리고 나면 그만일 테지요.

-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나는 언제나 허영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나, 나, 나, 이 '나'라는 말은 내 알뜰한 인생의 후렴 같아서, 내가 하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 말이 들렸답니다. 나는 자랑을 하지 않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특히 나의 숨은 재주인 그 겸양스러운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할 때는 더 그랬습니다.

-

나는 내 우월성밖에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나의 평온한 심경은 그것으로 설명될 수 있었던 겁니다.

-

나는 항상 놀라울 만한 망각의 능력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는 모든 일을, 무엇보다도 먼저 내 결심을 잊어버렸어요. 결국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요. 전쟁이며 자살, 사랑과 빈곤 같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긴 했습니다만, 그건 예의상이요 표면상으로 그랬을 뿐입니다. 때로는 내 일상생활에 관계없는 일에 열렬한 관심을 갖는 체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실상은 내 자유가 구속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정말 그 일에 참여하진 않았습니다. 뭐랄까요? 그저 스치며 지나갈 뿐이었어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스치면서 흘러가기만 했던 겁니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해본다면, 나의 망각이 기특할 때도 있었답니다. 모든 모욕을 용서하는 것을 신앙처럼 여기고 또 실제로 용서하기도 하지만, 그 일들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을 보셨겠지요. 나의 인품은 모욕을 용서할 만큼 훌륭하지 못했지만, 나는 언제나 받은 모욕을 결국에는 잊어버리곤 했어요. 그래서 내게 미움을 받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내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을 보고는 어리둥절해했지요. 그럴 때면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내 너그러운 마음씨를 찬탄하기도 하고, 아니면 나의 비굴함을 멸시하기도 했는데, 내 이유는 그보다 더 간단하다는 걸 생각하진 못했어요. 나는 그 사람의 이름까지도 잊어버렸던 겁니다. 나를 무관심하게, 또는 의리를 모르는 자로 만들던 결함이, 그럴 때면 나를 도량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답니다.

-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혜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갱스터가 되어 순전히 폭력으로 사회를 지배하기를 꿈꾸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갱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지라, 대개는 정치르 수단으로 택하여 가장 잔인한 정당으로 달려갑니다. 모든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면 자기의 정신을 욕되게 한들 어떻겠습니까? 안 그래요? 내 마음속에서 나는 흐뭇한 압제의 몽상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

내가 살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없어서는 안 됐어요. 즉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또는 가능한 한 최대 다수의 인간들이 영원히 공백 상태로, 자주적 생활을 갖지 말고, 어느 때이고 내 부름에 응답할 태세를 갖추고, 내 광명으로써 내가 그들을 돕는 날까지 불모의 삶에 몸을 맡긴 채 나를 향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하는 사람들이 살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내 의사에 따라 이따금씩 일시적으로 그들의 생명을 얻을 수 있어야만 했던 거예요.

-

사람들은 가령 당신이 죽어야만 당신의 생각, 당신의 성실성, 당신의 심각한 괴로움을 알아줍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그 처지가 모호하고, 기껏해야 사람들의 회의의 대상이 될 뿐이에요.

-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자면 적어도 한 번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

내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벌써부터 녀석들의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자살을 한 건 견뎌내지 못했기 떄문이지..." 아아, 여보세요, 인간의 생각이란 참 빈약하기 짝이 없어요. 한 가지 이유로서 자살을 하게 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안 들어간단 말입니다. 그러니 자진해서 죽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이야말로 어떠한 인간이라도(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 말하자면 현자들이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

우리는 누구나 모두 예외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호소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모두 기어코 자기의 결백을 요구하려 들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 인류와 하늘이라도 고발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

솔직히 말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나서 될 수 있는 대로 거짓말을 늘어놓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깊은 욕망에 응하고 그들에 대한 당신의 우정을 이중으로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

만약에 사랑한다고 대답하면 나는 실제의 감정을 넘어서는 것이 되겠고, 대담하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사랑받을 수 없게 될 염려가 있고 해서 마음이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

한 인간을 죽이는 데는 언제나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요. 반면에 한 인간이 사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반응형
LIS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승옥, 무진기행  (0) 2022.02.09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0) 2022.02.09
면도날, 서머셋 몸  (0) 2022.02.04
셰익스피어 소네트 71  (0) 2022.02.04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0) 2021.06.18
반응형
SMALL

(독후감)

문학을 읽는다는 것이 비문학에 비해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설.

서머셋 몸이라면 천일야화가 아닌 만일야화도 가능할 것이다. 타고난 소설가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수 없다.

<면도날>의 모든 캐릭터는 놀라울 정도로 입체적이다. 그리고 읽어나감에 따라 모든 캐릭터에 애착이 생기고 정감을 느끼게 된다. 작중에는 비슷한 캐릭터들이 없다. 모두 제각각이며, 개성이 넘친다. 이것은 면도날이라는 소설 속에 인간 군상 자체가 집약적으로 표현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과 의식에 대한 탐구도 볼 수 있으며, 이런 주제를 마치 서머셋 몸 본인의 실제 주변인들을 관찰하는 듯한 태도로 서술하는 것이 훌륭하다. 앨리엇같은 경우는 굉장히 속물적이고 얍삽한 겉멋을 중시하는 캐릭터로 묘사되나, 고작 그정도의 캐릭터성으로 소비됨에 그치지 않고 선량하고 사려깊은 내면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게다가 결말부에서는 또다른.. 캐릭터들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서술이 이어진다. 서머셋 몸은 이 많지 않은 개성적인 캐릭터들로 당세대의 인간 군상을 대표적인 몇 인물에 함축하여 당시 런던, 파리, 미국을 세밀히 묘사한다. 물질만능주의적 미국에 대한 풍자와 배타적인 사교계 및 표면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나 실제로는 어디에나 팽배하는 신분제도 등에 대한 신랄한 비판, 심지어는 종교에 관한 고찰까지, 서머셋 몸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상당히 많은 의미들이 담긴 서머셋 몸의 대작이다.

서머셋 몸의 다른 작품으로 <인생의 베일>,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인생의 베일과 달과 6펜스도 주제의식은 있는 소설이지만 나의 감상으로는 재미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만 있는 소설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어떤 의미를 담았느냐에 관계없이 재미가 최우선요소다) 달과 6펜스는, 6펜스를 좇을 테냐 달이라는 이름의 이상을 좇을 테냐? 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며, 인생의 베일은 사랑과 그의 상실, 그리고 이전의 사랑과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키티라는 한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담았다. 서머셋 몸은 타고난 이야기꾼인지라 이 두 책을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해당 소설 <면도날>은 다른 소설들보다 굉장히 풍부한 주제가 담겨 있지만, 마치 서머셋 몸 본인의 이야기라고 착각할 수준으로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을 재미로써 만들어낸다. 인물의 입체성을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초반부 50페이지 남짓은 지루했지만, 이후로는 한 치의 루즈함 없이 소설이 전개된다. 내게 서머셋 몸의 소설은 가장 소설다운 소설이다. 재미있고, 막힘없이 읽히며, 깊은 추체험이 가능하며, 적당한 의식이 있는 그런것.

이 소설에 진정한 주인공같은 것은 없다. 본인은 ‘래리’라는 캐릭터에 굉장히 감정이입을 하고 읽었고, 어딘가에서 자기소개를 할 일이 생기면 래리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나와 래리의 자아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래리같은 삶을 지향하기도 한다. 서머셋 몸도 래리를 통해 물질에 집착하는 미국 사회를 비판하며 정신적인 것에 대한 중요성을 부여했지만,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비중있는 주인공이 래리라는 말은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래리 또한 당대의 인간 군상 중 하나이며, 이 책에서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달>의 세계를 사는 래리의 삶에 집중하는 소설이나 <6펜스>의 세계를 사는 이사벨이나 그레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연 들지 않는다.

서머셋 몸은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다. 서머셋 몸의 세 작품 모두 잊히지 않을 깊은 감동을 느끼며 읽었다. 소설을 예술 수단이 아닌 소설 그 자체로 존재하게 하는 작가. 빠른 시일 내에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서머셋 몸 소설을 더 알고싶다.


‘그럼 4년 동안 책을 읽었단 말입니까? 그래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

저도 믿고 싶었는데,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는 하느님을 믿을 수가 없더군요. 수사들이 그랬죠. 하느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그건 그리 가치 있는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토벤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교향곡들을 만들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존재하던 음악을 어떻게든 표현해야 했고, 그래서 자신이 아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완벽하게 만든 것뿐이죠.

-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

 

“정말 인정머리들도 없습디다.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전부들 지겹단 말입니다. 내가 파티를 열 때는 그렇게 야단스럽게 나를 치켜세우더니 이제 늙고 병이 드니까 필요 없다 이거지요. 제가 앓아누운 후로 병문안 온 사람은 열 명도 안 되고, 이번주 내내 받은 거라곤 초라한 꽃다발 하나가 전부입니다. 내가 안 해 준 게 뭐가 있습니까? 음식도 내주고 술도 내주고 심지어는 심부름도 해 줬습니다. 그들이 여는 파티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줬지요. 그들을 위해 내 모든 걸 보여 줬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얻은 게 뭡니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다. 내 생사조차 신경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는지…….”

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움푹 팬 두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국을 떠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죽음을 코앞에 둔 노인이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몹시 서글퍼졌다.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견딜 수 없을 만큼 그가 애처로웠다.

-

“정말입니다, 선생님.”

그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천국에도 빌어먹을 평등 따윈 없을 겁니다.”

-

“인내를 갖고 평온하게, 자비롭게, 욕심 없이 그리고 금욕적으로.”

-

저는 몸으로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공부를 하다가 막힐 때마다 육체노동을 하면 정신적으로 기운이 솟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스피노자의 전기가 떠오르네요. 스피노자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렌즈에 광내는 일을 했는데, 그 전기 작가는 그게 끔찍한 고난인 것처럼 묘사했거든요. 그걸 읽으면서 작가가 정말 어리석다고 생각했죠. 그런 일은 틀림없이 스피노자의 지적 활동에 도움이 됐을 겁니다. 고찰이라는 힘든 작업에서 잠시나마 주의를 돌릴 수 있었을 테니까요.

-

그리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앨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물론 ‘자칭’ 지식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트집을 잡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대중은 모두 성공담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결말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반응형
LIS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0) 2022.02.09
알베르 카뮈, 전락  (0) 2022.02.08
셰익스피어 소네트 71  (0) 2022.02.04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0) 2021.06.18
사양, 다자이 오사무  (0) 2021.06.16
반응형
SMALL

 

 

No longer mourn for me when I am dead

Than you shall hear the surly sullen bell

Give warning to the world that I am fled

From this wile world with vilest worms to dwell:

Nay, if you read this line, remember not

The hand that writ it, for I love you so,

That I in your sweet thoughts would be forgot,

O! if ㅡ I say you look upon this verse,

When I perhaps compounded am with clay,

Do not so much as my poor name rehearse;

But let your love even with my life decay;

   Lest the wise world shoould look into your moan,

   And mock you with me after I am gone.

 

 

내가 죽어 음산한 종소리가,

내가 이 저열한 세상을 떠나

가장 저열한 벌레와 살러 간 것을 알리거든.

그대 더 오래 슬퍼 말라.

그리고 이 시구를 읽더라도 그 필자는 생각지도 말라.

내 그대를 극진히 사랑하기에, 그대가

나 때문에 슬퍼하는 것보다, 그대의

고운 생각 속에서 잊어지기를 바라노라.

내 말하노니, 아마도 내가 흙이 되었을 때

그대가 이 시구를 읽더라도

나의 대수롭지 않은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고,

그대의 사랑도 나의 목숨과 함께 소멸하게 하라,

   영리한 세상이 그대가 애탄하는 것을 보고

   나 죽은 후 그대를 조롱하지 않도록.

반응형
LIS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0) 2022.02.09
알베르 카뮈, 전락  (0) 2022.02.08
면도날, 서머셋 몸  (0) 2022.02.04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0) 2021.06.18
사양, 다자이 오사무  (0) 2021.06.16
반응형
SMALL

 

 

 

항상 아첨받으면서도 욕을 먹는 최악의 경우보다는

이렇게 내놓고 경멸을 받는 편이 더 낫지.

운명의 수레바퀴 가장 낮은 곳에서 철저하게 절망한 자는

항상 희망을 품게 되며, 겁날 것이 없다.

최상의 상태에서는 떨어지는 것이 슬프지만

최악의 상태에서는 웃을 일만 있을 뿐.

그렇다면 나를 감싸는 허공의 대기여, 어서 오너라.

네가 최악의 상태로 몰아 내친 이 불쌍한 녀석은

너의 광풍에 빚진 것 하나 없다.


아, 조리(條理)와 헛소리가 섞인 광기 속의 이성이여!


이 슬픔의 무게에 우리는 복종해야 합니다.

말해야 하는 바가 아니라, 느끼는 바를 말해야만 합니다.

원로들이 겪으신 그 많은 것들을 우리 젊은이들은

다 겪을 수도, 그처럼 장수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반응형
LIS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0) 2022.02.09
알베르 카뮈, 전락  (0) 2022.02.08
면도날, 서머셋 몸  (0) 2022.02.04
셰익스피어 소네트 71  (0) 2022.02.04
사양, 다자이 오사무  (0) 2021.06.16
반응형
SMALL

 

사양, 다자이 오사무

★★★★★

2021. 06. 04

 


 

나는 확신하련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불에 타 죽는 고통. 괴로워도 괴롭다 단 한마디조차 외칠 수 없는 고래(古來)의 미증유, 세상이 생긴 이래 전례도 없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지옥의 느낌을 속이지 마시라.


누나.

내겐 희망의 지반이 없습니다. 안녕.

결국 내 죽음은 자연사입니다. 사람은 사상만으로 죽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뜨거운 우동에서 올라오는 김에 얼굴을 묻고 후루룩 우동을 먹으며, 나는 지금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쓸쓸함의 극한을 맛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조숙한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거렸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글 못 쓴다고 수군거렸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부자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냉담한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녀석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괴로워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척한다고 수군거렸다.

자꾸만, 빗나간다.


난처한 여자. 그러나 이 문제로 가장 괴로워하는 점은 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털끝만큼도 괴로워하지 않는 방관자가, 볼품없이 돛을 늘어뜨린 채 쉬면서 이 문제를 비판하는 건 난센스입니다. 제게 적당히 무슨 사상 같은 걸 갖다 붙이지 말아 주세요. 저는 사상이 없습니다. 저는 사상이나 철학을 앞세워 행동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이 얼마나 비굴한 말인가요? 남을 업신여기는 동시에 자신마저 업신여기고, 아무런 자부심도 없이 모든 노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말. 마르크시즘은 노동하는 자의 우위를 주장합니다. '다 똑같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유곽의 호객꾼만 그렇게 말합니다. "헤헤헤, 아무리 잘난 척해 봤자, 똑같은 인간 아닌가?"

어째서 똑같다고 하는가. '월등히 낫다.'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노예근성의 복수.

 

반응형
LIS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0) 2022.02.09
알베르 카뮈, 전락  (0) 2022.02.08
면도날, 서머셋 몸  (0) 2022.02.04
셰익스피어 소네트 71  (0) 2022.02.04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0) 2021.06.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