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문학을 읽는다는 것이 비문학에 비해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설.
서머셋 몸이라면 천일야화가 아닌 만일야화도 가능할 것이다. 타고난 소설가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수 없다.
<면도날>의 모든 캐릭터는 놀라울 정도로 입체적이다. 그리고 읽어나감에 따라 모든 캐릭터에 애착이 생기고 정감을 느끼게 된다. 작중에는 비슷한 캐릭터들이 없다. 모두 제각각이며, 개성이 넘친다. 이것은 면도날이라는 소설 속에 인간 군상 자체가 집약적으로 표현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과 의식에 대한 탐구도 볼 수 있으며, 이런 주제를 마치 서머셋 몸 본인의 실제 주변인들을 관찰하는 듯한 태도로 서술하는 것이 훌륭하다. 앨리엇같은 경우는 굉장히 속물적이고 얍삽한 겉멋을 중시하는 캐릭터로 묘사되나, 고작 그정도의 캐릭터성으로 소비됨에 그치지 않고 선량하고 사려깊은 내면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게다가 결말부에서는 또다른.. 캐릭터들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서술이 이어진다. 서머셋 몸은 이 많지 않은 개성적인 캐릭터들로 당세대의 인간 군상을 대표적인 몇 인물에 함축하여 당시 런던, 파리, 미국을 세밀히 묘사한다. 물질만능주의적 미국에 대한 풍자와 배타적인 사교계 및 표면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나 실제로는 어디에나 팽배하는 신분제도 등에 대한 신랄한 비판, 심지어는 종교에 관한 고찰까지, 서머셋 몸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상당히 많은 의미들이 담긴 서머셋 몸의 대작이다.
서머셋 몸의 다른 작품으로 <인생의 베일>,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인생의 베일과 달과 6펜스도 주제의식은 있는 소설이지만 나의 감상으로는 재미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만 있는 소설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어떤 의미를 담았느냐에 관계없이 재미가 최우선요소다) 달과 6펜스는, 6펜스를 좇을 테냐 달이라는 이름의 이상을 좇을 테냐? 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며, 인생의 베일은 사랑과 그의 상실, 그리고 이전의 사랑과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키티라는 한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담았다. 서머셋 몸은 타고난 이야기꾼인지라 이 두 책을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해당 소설 <면도날>은 다른 소설들보다 굉장히 풍부한 주제가 담겨 있지만, 마치 서머셋 몸 본인의 이야기라고 착각할 수준으로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을 재미로써 만들어낸다. 인물의 입체성을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초반부 50페이지 남짓은 지루했지만, 이후로는 한 치의 루즈함 없이 소설이 전개된다. 내게 서머셋 몸의 소설은 가장 소설다운 소설이다. 재미있고, 막힘없이 읽히며, 깊은 추체험이 가능하며, 적당한 의식이 있는 그런것.
이 소설에 진정한 주인공같은 것은 없다. 본인은 ‘래리’라는 캐릭터에 굉장히 감정이입을 하고 읽었고, 어딘가에서 자기소개를 할 일이 생기면 래리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나와 래리의 자아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래리같은 삶을 지향하기도 한다. 서머셋 몸도 래리를 통해 물질에 집착하는 미국 사회를 비판하며 정신적인 것에 대한 중요성을 부여했지만,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비중있는 주인공이 래리라는 말은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래리 또한 당대의 인간 군상 중 하나이며, 이 책에서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달>의 세계를 사는 래리의 삶에 집중하는 소설이나 <6펜스>의 세계를 사는 이사벨이나 그레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연 들지 않는다.
서머셋 몸은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다. 서머셋 몸의 세 작품 모두 잊히지 않을 깊은 감동을 느끼며 읽었다. 소설을 예술 수단이 아닌 소설 그 자체로 존재하게 하는 작가. 빠른 시일 내에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서머셋 몸 소설을 더 알고싶다.
‘그럼 4년 동안 책을 읽었단 말입니까? 그래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
저도 믿고 싶었는데,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는 하느님을 믿을 수가 없더군요. 수사들이 그랬죠. 하느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그건 그리 가치 있는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토벤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교향곡들을 만들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존재하던 음악을 어떻게든 표현해야 했고, 그래서 자신이 아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완벽하게 만든 것뿐이죠.
-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
“정말 인정머리들도 없습디다.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전부들 지겹단 말입니다. 내가 파티를 열 때는 그렇게 야단스럽게 나를 치켜세우더니 이제 늙고 병이 드니까 필요 없다 이거지요. 제가 앓아누운 후로 병문안 온 사람은 열 명도 안 되고, 이번주 내내 받은 거라곤 초라한 꽃다발 하나가 전부입니다. 내가 안 해 준 게 뭐가 있습니까? 음식도 내주고 술도 내주고 심지어는 심부름도 해 줬습니다. 그들이 여는 파티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줬지요. 그들을 위해 내 모든 걸 보여 줬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얻은 게 뭡니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다. 내 생사조차 신경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는지…….”
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움푹 팬 두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국을 떠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죽음을 코앞에 둔 노인이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몹시 서글퍼졌다.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견딜 수 없을 만큼 그가 애처로웠다.
-
“정말입니다, 선생님.”
그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천국에도 빌어먹을 평등 따윈 없을 겁니다.”
-
“인내를 갖고 평온하게, 자비롭게, 욕심 없이 그리고 금욕적으로.”
-
저는 몸으로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공부를 하다가 막힐 때마다 육체노동을 하면 정신적으로 기운이 솟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스피노자의 전기가 떠오르네요. 스피노자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렌즈에 광내는 일을 했는데, 그 전기 작가는 그게 끔찍한 고난인 것처럼 묘사했거든요. 그걸 읽으면서 작가가 정말 어리석다고 생각했죠. 그런 일은 틀림없이 스피노자의 지적 활동에 도움이 됐을 겁니다. 고찰이라는 힘든 작업에서 잠시나마 주의를 돌릴 수 있었을 테니까요.
-
그리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앨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물론 ‘자칭’ 지식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트집을 잡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대중은 모두 성공담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결말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0) | 2022.02.09 |
---|---|
알베르 카뮈, 전락 (0) | 2022.02.08 |
셰익스피어 소네트 71 (0) | 2022.02.04 |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0) | 2021.06.18 |
사양, 다자이 오사무 (0) | 2021.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