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는 건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을 때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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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의하기 쉬운 사람.
나는 저주받은 사람처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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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내면의 유일한 의미는
그것들의 내면의 의미 따위는 없다는 것뿐
-
"아침이 밝아 온다"
아침이 밝아 온다. 아니, 아침은 밝아 오지 않는다.
아침은 추상적인 것, 상태이지,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양을 보기 시작한다, 지금 여기 이 시간에.
아침 태양이 나무에 비치는 것이 아름답다면,
아침을 "태양을 보기 시작함" 이라 부르는 것도
아침이라 부르는 것만큼이나 아름답다.
그래서 사물에 틀린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장점이 없다.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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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체가 나를 버리는 어떤 힘,
모든 현실이 한복판에 얼굴이 있는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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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들과 강을 보기 위해서는"
들판들과 강을 보기 위해서는
창문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나무들과 꽃들을 보기 위해서는
장님이 아닌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런 철학을 가지지 않는 것 또한 필요하다.
철학을 가지면 나무라는 것도 없다
: 그저 관념만 있을 뿐
오로지 우리 각자만 존재한다, 마치 동굴처럼,
닫힌 창문 하나뿐, 온 세상은 저 바깥에 있다,
그리고 창문이 열린다면 볼 수 있을 것에 관한 꿈,
그건 막상 창문을 열 때 보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신을 거역하는 것,
왜냐하면 신은 우리가 그를 모르길 바랐고,
그래서 자신을 보여 주지 않은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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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나 비 아래 있는 것 외에는 바란 게 없었다 ㅡ
해가 있을 때는 해를
비가 올 때는 비를 바라고,
(다른 것들은 전혀)
더위와 추위와 바람을 느끼길,
그리고 더 멀리 가지 않기를.
나도 한 번은 사랑을 했지, 날 사랑하리라고도 생각했지,
그러나 사랑받지는 못했지.
꼭 받아야만 하는 법은 없다는
유일한 큰 이유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지.
나는 해와 비에게로 돌아와 나를 위로했어,
집 문간에 다시 앉아서.
초원도, 결국, 사랑받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초록이 아니더라.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만큼은.
느낀다는 것은 산만하다는 것.
-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
책 한 권 출판되지 못하고,
내 시구들이 인쇄된 모양이 어떤 건지 보지도 못한다면,
내 사정을 염려하려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염려 말라고.
그런 일이 생겼다면, 그게 맞는 거다.
-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무것으로 남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햇빛과 공기에 우리는 조금 늦을 뿐이다.
축축한 흙의, 우리를 짓누르는
숨 막히는 암흑으로부터,
자식을 낳는 지연된 시체들.
제정된 법들, 눈에 보이는 동상들, 완성된 송시들 ㅡ
모든 것들이 자신만의 무덤을 갖는다. 만약 우리,
내면의 태양이 피를 주는 몸에게, 일몰이
있다면, 그것들에겐ㄴ 왜 없겠나?
우리는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들,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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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비주의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그것은 살면서,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
윤율 따위 난 아무래도 좋다. 나란히 선
나무 두 그루가 똑같기란 드문 일.
꽃들이 색을 지니듯 나는 생각하고 쓰지만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덜 완벽하다.
왜냐하면 온전히 외형으로만 존재하는
자연의 단순성이 내게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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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시라는 것이 인간, 즉 살아 숨 쉬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의 상상이 그 인간의 시선을 우리에게 던지는, 다른 세계에 속한 피부로 만져지는 육체적 존재, 미적 현실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어딘가에서는 신적인 존재.
ㅡ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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