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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상주 은모래비치가 있어서 방문하려던 중

평소 독립서점이나 동네 책방 떠돌아다니면서 특이한 출판물 하나하나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또 참새방앗간 같은 곳을 발견해서 지나칠 수 없이 방문하는 걸로 ^-^

 

은모래 비치 주변 골목골목을 돌면서 이가게 저가게 구경하다 보면 은모래마을책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말에 방문했는데도 골목이 고즈넉한 것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책방이었음

 

개인적으로 이사를 자주 다니는 편이라 종이책을 선호하지 않지만

동네서점에 오면 반드시 책을 하나씩 사가고 싶어서 알라딘이나 교보문고에 검색 철저히 해서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면 반드시 전자책이 있는지 먼저 살펴본다

 

요 사진에 나와 있는 책들 중에서도 구미가 당기는 책들이 많았고 사진에 보이는 1박 2일 캠핑 과학이 전자책이 없었음!

그런데 보다보니 더더더 흥미로운 책이 있어서 우선은 패스

평생 듣도보도 못한 책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구미가 당기는 책들은 몇 권 찍어놓기

인생은 짧고 읽은 책은 많구나 ( ཀ ʖ̯ ཀ)

그리고 책마다 포스트잇이 파란 포스트잇, 분홍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는데

파란색이 새 책이었던가? 분홍색이 중고책이었던가... 하여간 남해 은모래마을책방만의 규칙이 있었다.

중고책은 30퍼센트 할인이 적용된다고 하였는데 (방문 당시 기준) 좋은 제도 같았음!

알라딘중고서점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알라딘중고서점이 모든 동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남해 주민들끼리 동네 서점에서 읽은 책들을 저렴하게 주고 받고 읽으며 교양을 쌓는 것이 너무 좋아 보였음!

상주은모래비치 주변 주민들이 부러와요 부러와요

 

요렇게 만화, 그래픽노블 류의 책들도 많이 있다. 

책 종류가 풍성해서 정말 마음에 들었음!

전국 독립서점 투어 다니다 보면 완전히 관심없는 책들만 한바가지 쌓여있는 곳도 많다

모 몰론 주인장 마음이지만.. 요기는 지역 주민 커뮤니티공간같은 느낌도 주는 것 같았음!

이렇게 책을 자유롭게 읽고 갈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책 구매하기 전에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음 ㅠㅠ (물론 책은 나갈때 구입함)

공간 이용료 받는 동네책방도 많은데 진짜로 독서를 좋아하는 책방지기님만이 할 수 있는 선택 같아서 너무 좋았음!!

저두 물론 은모래마을비치 관광하러 나가기 전에 얄팍한 책을 한 권 읽고 갔습니당

 

 

약간 어린이용 책이라기엔 어른이용 책 느낌도 적잖은 땡땡 시리즈도 구비

여행 중이라 길게 읽을 수는 없어서 땡땡 시리즈로 픽해서 소비에트에 간 떙땡 맹독서 ㅎㅎ

내가 지역 주민이었다면 맨날맨날 책 읽으러 와서 중고책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죽치고 싶은 공간이었음 진짜루

아늑하게 떙땡 시리즈 독서까지 완료

 

나는 남해 여자농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에세이 한 권 잡고 나왔습니다 ㅎㅎ

"우리는 아직 철기시대에 산다" 라는 책이었는데, 

요 책을 골라서 결제할 당시 책방지기님께서 다음주 언젠가 작가님께서 방문하신다고 했는데

남해 주민이 아니라 못 보고 떠나는 것이 너무너무너무 아쉬웠음

 

아주 좋은 독서공간에서 독서를 즐기고 좋은 책 (특히 남해 관련 책이 있어서 너무 좋았음.. 생각해보니 남해 금산 시집도 있었네 문지 시집 ㅎㅎ) 도 겟헤서 나온 다음 상주 은모래비치를 산책하니 너무 좋았다.

 

남해 여행 시 평소 동네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은모래마을책방 방문해서 남해 관련 책을 기념으로 겟하는 것 추천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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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타령하면서 꿈조차 못 꾸게 만드는 작자가 누구인지, 사회주의가 무조건 전체주의로 빠진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이런 정치적인 글을 써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 그래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조차 잘못되었다고 퍼뜨린 조지 오웰이 그렇게나 현상유지하고 싶었던 사회는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그래서 지금 이 사회는 과연 자유로운지,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고 있는 자유가 맞는지? 별다른 필력도 없이 정치적 풍자밖에 없는 이런 글이 뭐라고.
또한 어떠한 비판도 없이 이런 글을 찬미하는 사람들은 고전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대하는 건지.
하긴 이런 책이 고전으로 남아버렸다는 사실이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자유로운' 생각을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대변한다. 이미 시대를 거친 뇌. 자유라고 믿고 있는 것뿐인 부자유. 진짜 맹목적인 신격화는 누구에게서 일어나고 있는건지.
내가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 책이 비판받지 않는 이유는 이미 단순히 민주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혹은 '돈' 그 자체가 종교적 의미가 되어버린 이유겠지.  사상은 종교의 취급을 받지 않으므로 종교의 약점은 교묘히 명분 뒤에 숨은 채로 숨쉬고 있다. 성경은 무신론자에 의해 자주 비난받지만, 동물농장은 찬사만이 잇따른다. 사상적인 문학 또한 종교처럼 반드시 비판하는 주체가 필요하다 느낀다.

"공산주의 혁명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어. 아시겠어요?" 느낌. 물론 인간이 욕심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태껏 실패사례가 있는 것이겠지만 이런 작자들 덕분에 입밖으로 감히 내지도 못할 사상이 됨. 자본주의의 실패사례또한 2022년 세계에 편재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피라미드 최고층자들은 그 실패가 자본주의 자체의 실패가 아닌 '그 집단' 혹은 '그 국가'의 실패라고 하겠지. 그들에게는 자본주의만큼 안락한 이데올로기가 따로 없을 터이니.

조지 오웰의 진짜 큰 문제는 '나폴레옹'이 집권하지 않고 메이저나 스노볼이 집권하는 미래를 상상할 두뇌까지는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해당 소설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문학이기에 그럴 의욕조차 들지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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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은
자살 충동을 떨쳐버리는 일만으로
다 소진되고 말았다.








실제로 나는 사람들과의 사귐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고 여겨진다
낯선 집, 낯선 사람들,
혹은 전혀 친숙한 느낌이 들지 않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보면
그 공간 전체가 내 가슴을 덮쳐누르는 듯,
숨이 콱 막혀온다.

수줍음과 사교성은 완전히 독립된 별도의 성질이다.
그러므로 수줍은 성격인 동시에 사교성도 있는 그런 성격의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가장 괴롭다.
왜냐하면, 타인과 함께 있고 싶은데, 그게 괴롭기 때문이다.








당신도 소문을 듣게 될지 모르겠군요.
왜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지.
왜 문학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지
거기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한심한 답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아마, 지금의 직업은 나를 망치고 말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무실로 통하는 좁은 복도에서
나는 매일 아침 절망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나보다 의지가 강한 인간이라면 기꺼이 자살했겠지요.








인생에 필요한 능력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인간적인 약점뿐.








친구와의 관계에 대하여
지금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그것은 허무한 도움닫기였다.
사람이 긴 인생 동안 되풀이해서 시도해보는,
대개는 희망이 없는 도움닫기.
도움닫기니까 도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의 인생 도약인지
아니면 인생으로부터 튀어 나가는 것인지
당사자는 모른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내게는 너무 버겁다.
왜냐하면,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
유일한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문학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무엇이 되고 싶지도 않고,
될 능력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직장 업무에 집중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것은 나를 완전히 혼란에 빠뜨려 버릴 것이다.









문학자로서의 나의 운명은 매우 단순하다.
꿈을 꾸는 내면생활을 묘사하는 것이 인생의 중심이 되었고
그 밖의 모든 일은 나중 일이 되어 버렸다.
나의 생활은 지독히도 위축되고, 점점 더 움츠리게 된다.
내면의 묘사 외에, 그 밖의 어떤 것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묘사를 위한 에너지마저 고갈되었다.
어쩌면 영원히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실상을 말하자면
스토리 구성을 못 하는 사람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말을 못 한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면
처음 혼자 힘으로 서서 걸음마를 떼는
유아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생활은 다만 쓰는 것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시간은 부족하고
체력은 바닥이고
일은 말할 수 없이 부담스럽고
주거 환경은 소란스럽고
쾌적한 환경에서 차분한 기분으로 살 수 없다면
마술이라도 부려서 뚫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아라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너무나 확실히 보인다.
일하고 있는 나는 마치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오래 머리를 들고 있는 꼴이다.
그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얼마나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일까.










나는 사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수영을 할 수 있다.
다만, 과거에 대한 기억이 다른 사람들보다 선명해서
예전에 수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지금은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수영을 할 수 없는 거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받은 교육은
해로운 독에 지나지 않았다.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교육을 받으며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느라
수업에 집중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혹시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한다 해도
나는 절대 듣지 않을 것이다.










행복에 이르는 완벽한 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기 안에 있는 확고한 것을 신뢰하고
그것을 가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카프카는 마치 탄광 속에 들어간 카나리아 같았다.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가지고 가면, 혹시 가스가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카나리아에게 이상이 나타난다.
독가스에 약한 카나리아는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가장 먼저 괴로워 파닥거린다.






절망은 나의 힘,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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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가지고 있던 평온, 그걸 내게 주자, 그게 내게는 불안이었어.

나를 해방시켜 주었지. 하지만 인간의 운명은 노예가 되는 것이었어.

나를 일깨워 주었지. 하지만 인간이 된다는 건 잠드는 것이었어.

 

-

 

하지만, 내가 사랑을 주문했는데, 어째서 식은 포르투풍 내장 요리를? 가져다준 거냐고.

차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데,

차게 가져다줬다고.

나는 불평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찼다고.

절대 차게 먹는 게 아닌데, 차게 나왔다고.

 

-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모든 종교들은 제과점보다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다.

먹어, 지저분한 어린애야, 어서 먹어!

나도 네가 먹는 것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선, 은으로 된 종이,

은박 포장지를 뜯자마자

모두 다 땅에 버려 버린다, 삶을 버렸던 것처럼.)

 

-

 

이 세계는 정복하려고 태어난 자를 위한 것이지

정복할 수 있다고 꿈꾸는 자를 위한 게 아니다. 설사 그들이 맞다 해도.

나는 나폴레옹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이 꿈꿨다.

나는 가상의 품에 예수보다 많은 인류애를 품었다.

나는 그 어떤 칸트도 쓰지 못한 철학들을 비밀리에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리고 아마 영원히, 다락방의 아무개.

비록 거기 살지는 않지만,

나는 항상 무언가를 위해 타고나지는 않은 사람일 것이고,

나는 항상 단지 자질은 있었던 사람일 것이며,

나는 항상 문 없는 벽 앞에서 문 열어주길 기다린 사람일 것이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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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 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

나는 다시 여자와 나란히 서서 걸었다. 나는 갑자기 이 여자와 친해진 것 같았다. 다리가 끝나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그 여자가 정말 무서워서 떠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바래다주기를 청했던 바로 그때부터 나는 그 여자가 내 생애 속에 끼어든 것을 느꼈다. 내 모든 친구들처럼, 이제는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때로는 내가 그들을 훼손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더욱 많이 그들이 나를 훼손시켰던 내 모든 친구들처럼.

-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바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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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 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

'자기 세계'라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몇 명 나는 알고 있는 셈이다. '자기 세계'라면 분명히 남의 세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마치 함락시킬 수 없는 성곽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성곽에서, 대기는 연초록빛에 함뿍 물들어 아른대고 그 사이로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을 불러일으켜 보는 것이지만 웬일인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세계'를 가졌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가 그 성곽에서도 특히 지하실을 차지하고 사는 모양이었다.

-

문화부장은 마치 아주 무식한 사람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문화부장이 지금 무식을 가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이쪽을 무식한 자로 취급하고 나서 자기가 이 무식한 자의 수준만큼 내려가 주겠다는 의도임이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문화부장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

돈? 아, 그래. 그게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애매하게 흘려보내 버리는 시간을 아까워하던 것은 그것이 돈으로 바꿔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무의식 중에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

차츰 그 여자는 깨달았다. 사내들이 탈출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거의 모두가 조건부라는 것을. 다시 말해서 사내들은 영원히 '이곳'을 떠날 의도는 없어 보였다. 그들은 잠깐 울타리를 뚫고 밖으로 나가 본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니 미처 그것도 아니다. 울타리 안에서 울타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만 한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모든 타인들에게 그들이 나의 타인임을 분명히 해 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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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건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을 때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나는 정의하기 쉬운 사람.

나는 저주받은 사람처럼 보았다.

 

 

-

 

 

사물 내면의 유일한 의미는

그것들의 내면의 의미 따위는 없다는 것뿐

 

 

-

 

 

"아침이 밝아 온다"

 

아침이 밝아 온다. 아니, 아침은 밝아 오지 않는다.

아침은 추상적인 것, 상태이지,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양을 보기 시작한다, 지금 여기 이 시간에.

아침 태양이 나무에 비치는 것이 아름답다면,

아침을 "태양을 보기 시작함" 이라 부르는 것도

아침이라 부르는 것만큼이나 아름답다.

그래서 사물에 틀린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장점이 없다.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도.

 

 

-

 

 

나의 전체가 나를 버리는 어떤 힘,

모든 현실이 한복판에 얼굴이 있는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본다

 

 

-

 

 

"들판들과 강을 보기 위해서는"

 

들판들과 강을 보기 위해서는

창문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나무들과 꽃들을 보기 위해서는

장님이 아닌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런 철학을 가지지 않는 것 또한 필요하다.

철학을 가지면 나무라는 것도 없다

 : 그저 관념만 있을 뿐

오로지 우리 각자만 존재한다, 마치 동굴처럼,

닫힌 창문 하나뿐, 온 세상은 저 바깥에 있다,

그리고 창문이 열린다면 볼 수 있을 것에 관한 꿈,

그건 막상 창문을 열 때 보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신을 거역하는 것,

왜냐하면 신은 우리가 그를 모르길 바랐고,

그래서 자신을 보여 주지 않은 것이기에……

 

 

-

 

 

나는 해나 비 아래 있는 것 외에는 바란 게 없었다 ㅡ

해가 있을 때는 해를

비가 올 때는 비를 바라고,

(다른 것들은 전혀)

더위와 추위와 바람을 느끼길,

그리고 더 멀리 가지 않기를.

 

나도 한 번은 사랑을 했지, 날 사랑하리라고도 생각했지,

그러나 사랑받지는 못했지.

꼭 받아야만 하는 법은 없다는

유일한 큰 이유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지.

 

나는 해와 비에게로 돌아와 나를 위로했어,

집 문간에 다시 앉아서.

초원도, 결국, 사랑받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초록이 아니더라.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만큼은.

느낀다는 것은 산만하다는 것.

 

 

-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

책 한 권 출판되지 못하고,

내 시구들이 인쇄된 모양이 어떤 건지 보지도 못한다면,

내 사정을 염려하려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염려 말라고.

그런 일이 생겼다면, 그게 맞는 거다.

 

 

-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무것으로 남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햇빛과 공기에 우리는 조금 늦을 뿐이다.

축축한 흙의, 우리를 짓누르는

          숨 막히는 암흑으로부터,

자식을 낳는 지연된 시체들.

 

제정된 법들, 눈에 보이는 동상들, 완성된 송시들 ㅡ

모든 것들이 자신만의 무덤을 갖는다. 만약 우리,

내면의 태양이 피를 주는 몸에게, 일몰이

          있다면, 그것들에겐ㄴ 왜 없겠나?

우리는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들, 아무것도 아니다.

 

 

-

 

 

내 신비주의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그것은 살면서,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

 

 

윤율 따위 난 아무래도 좋다. 나란히 선

나무 두 그루가 똑같기란 드문 일.

꽃들이 색을 지니듯 나는 생각하고 쓰지만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덜 완벽하다.

왜냐하면 온전히 외형으로만 존재하는

자연의 단순성이 내게는 없기에.

 

 

-

 

 

저는 가끔 시라는 것이 인간, 즉 살아 숨 쉬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의 상상이 그 인간의 시선을 우리에게 던지는, 다른 세계에 속한 피부로 만져지는 육체적 존재, 미적 현실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어딘가에서는 신적인 존재.

 

ㅡ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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